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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 이상찬 병원장] 칼럼 - 난임 치료와 시험관아기시술의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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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화병원 | 2025-04-29 | 24
1978년 7월 25일 아침, 영국에서 세계 최초로 시험관아기시술을 통해 태어난 아기의 소식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당시 산부인과 레지던트 1년 차였던 필자는 그 뉴스를 접하고 ‘이게 정말 가능한 이야기일까?
무슨 달나라 얘기 같은 소리잖아’ 하며 지나쳤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만큼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로부터 3년 뒤인 1981년에는 미국에서 시험관아기시술로 아기가 태어났고, 우리나라에서는 1985년에 처음으로 시험관아기시술로 쌍둥이가 태어났다. 당시에는 시험관아기로 임신에 성공하면 뉴스에 나올
정도로 큰 이슈였다. 환자들도, 의료진도 ‘설마 임신이 될까’ 하는 생각이 먼저였던 시기였다.

자연적으로는 한 번에 여러 마리의 새끼를 낳는 강아지나 고양이와 달리, 인간은 보통 한 달에 하나의 난자만 배출된다. 이 때문에 체외수정으로 임신까지 이어지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전환점이 찾아왔다. 여러 개의 난자를 얻을 수 있는 배란 유도 호르몬 주사가 개발된 것이다. 그 결과 시험관아기 임신율이 획기적으로 높아졌고, 치료 성공에 대한 기대치도 함께 올라갔다.

요즘은 시험관아기 시술을 하면 임신이 될 거라는 기대가 당연시되곤 하지만, 과거에는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었다. 다태임신, 즉 쌍둥이나 세쌍둥이 임신도 당시엔 기적처럼 여겨졌지만, 지금은 산모의 건강을
위해 오히려 다태임신을 피하고자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수정란 동결보존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이 자리잡고 있다. 한 번의 시술에서 10개 이상의 난자가 채취되더라도, 이 중 1, 2개의 수정란만
자궁에 이식하고 나머지는 동결보관해 두었다가 원하는 시점에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첫 아이를 출산한 후 몇 년 뒤, 보관 중이던 수정란으로 둘째나 셋째를 갖는 사례도 점차 늘고 있다.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정자의 운동성이 떨어지거나 정자 수가 극히 적은 남성은 자연 임신은 물론 시험관 시술로도 임신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다. 무정자증인 경우에는 아예 임신을 포기해야 했다.
그러나 1990년대 초, 미세현미경으로 정자 한 마리를 직접 난자에 주입하는 미세수정술(ICSI·Intracytoplasmic Sperm Injection)이 개발되며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여성은 정상인데 남성 측의 문제가
있는 경우, 이 기술 덕분에 오히려 더 높은 임신 성공률을 보이기도 한다. 무정자증 역시 희망이 없지는 않았다. 고환조직에서 정자를 찾아내기만 한다면, 미세수정술을 통해 임신이 가능해졌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변화였다.

1980년대 초에는 ‘아들딸 구별 말고 하나만 낳자’는 국가적인 산아제한 정책이 있었다. 이로 인해 많은 여성이 복강경을 이용해 나팔관을 묶는 수술을 받았고, 남성은 정관수술을 선택했다. 이후 다시 아이를
갖고 싶어질 때, 과거에는 나팔관 복원 수술이나 정관 복원 수술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시험관아기시술만으로도 충분히 높은 임신 성공률을 보일 수 있게 되었다.

난임 치료 기술은 해마다 빠르게 진보하고 있다. 최근에는 생식학을 전공한 연구원이 수정란을 선별하던 작업마저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이 대신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이 AI 로봇은 임신 가능성이 높은
수정란을 더 정확하게 골라내고, 이를 자궁에 이식하는 역할까지 수행한다는 보고가 나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면역학 기반의 착상 예측 기술, 인공자궁 개발, 줄기세포 응용, 유전자 분석 기술이 접목되면서
이제는 개인 맞춤형 난임 치료 시대가 눈앞에 다가왔다. 진단부터 치료, 수정란 선택, 이식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이 정교해지고, 보다 효율적이고 안전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두렵기도 하지만 피할 수 없는 변화다. 난임 치료를 포함한 의료계 전반에 걸쳐 인공지능과 생명과학이 융합되는 4차 산업혁명의 황금기가 열리고 있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서, 생명을 이어가는
일의 의미와 방법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된다. 변화의 한가운데서, 인간의 손길과 따뜻함이 결코 잊히지 않기를 바란다.